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첫 무대,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는 큰 성공이었다. 1948년 국내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75년이 흐른 올해, 글로리아오페라단(단장 양수화)의 20일(토) 공연에서 커다란 갈채를 받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날 무대의 꽃은 단연 비올레타 역의 소프라노 김은경이었다. <라 트라비아타>는 공연의 성패가 비올레타 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김은경은 신선하고 기품있는 목소리와 탁월한 감정 연기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디테일에서 서정성과 에너지, 섬세한 표정이 잘 살아났고, 관객과 가슴으로 소통하며 감동을 이끌어냈다. 2막 1장 <알프레도, 저를 사랑해 주세요Amami, Alfredo>는 모든 호흡을 모아서 폭발하듯 열창했고, 3막 〈지난날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는 시와 음악의 영혼을 노래에 잘 담아냈다. 두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 관객이 많았다.
알프레도 역의 테너 신상근은 뛰어난 미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막에서는 소리가 죽죽 뻗어나가지 못하고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었으나, 2막 1장부터 제 궤도에 올라서 청중을 만족시켰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3막에서 발군의 카리스마로 청중들을 압도했다. 제르몽 역의 박정민은 꽉찬 성량과 안정된 노래로 커다란 갈채를 받았다. 청중들은 특히 2막 1장 〈프로벤차 고향의 하늘과 땅을 너는 기억하니? Di Provenza il mar, il suol〉에 크게 열광했다. 2막 1장 비올레타와 제르몽의 이중창에서 박정민은 김은경과 완벽한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라 트라비아타>는 베르디 오페라 중 오케스트라와 출연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대목이 많은 편인데, 지휘자 카를로 팔레스키는 오케스트라와 무대를 완전히 장악하여 훌륭한 호흡을 이끌어냈다. 미세한 템포와 다이내믹 변화가 자주 등장하는 이 오페라에서 음악이 시종일관 안정되고 자연스레 흐른 것은 카를로 팔레스키의 공이 컸다. 전막을 암보로 지휘하며 성악가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완벽한 호흡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암보로 지휘하는 게 훨씬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세하고 열정적인 연주로 베르디의 음악혼을 잘 살려낸 뉴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가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개막작인 글로리아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 커튼콜 장면.
<라 트라비아타>는 주인공 비올레타, 알프레도, 제르몽에게 초점이 집중되기 때문에 멜로드라마로 인식되기 쉬운데, 사실은 합창과 무용이 활약하는 스펙터클 오페라이기도 하다. 전체 공연이 성공하려면 합창과 무용은 물론 무대, 의상, 조명, 분장, 영상 등 수많은 요소들이 잘 결합하여 시너지를 일으켜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출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날 무대는 파리의 코르티잔(사교계의 꽃) 비올레타를 상징하는 동백꽃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꾸몄다. 파리 신흥 부르주아의 욕망의 시선이 머무는 쇼윈도 안에 동백꽃을 배치하여 오페라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잘 전달했다. 동백꽃 이미지를 고정시켜 놓고 장면마다 조금씩 변화를 준 것은 효율적이었고,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사는 시골집을 자연광이 느껴지는 따뜻한 공간으로 꾸미고, 푸른 잎사귀로 비올레타의 싱싱한 생명력을 표현한 게 특히 참신했다.
영상과 조명으로 비올레타의 심리상태와 드라마의 분위기를 표현한 연출은 효과적이었다. 2막 1장 제르몽이 등장할 때 먹구름이 나타나서 불안한 느낌을 주고, 비올레타가 흐느낄 때 비바람 몰아치는 이미지가 등장한 것은 드라마의 흐름과 잘 어울렸고, 무용과 몹신을 배경화면에 투사한 것은 성의있는 연출이었다. 3막 비올레타의 창백한 분장과 의상과 조명도 자연스러웠다. 마지막 장면, 하얀 커튼이 떨어지는 걸로 비올레타 죽음을 표현한 것은 섬짓할 정도로 강렬한 연출이었다. 이 장면은 연출가 최이순이 밝혔듯, “너무 늦게 돌아온 알프레도, 너무나 가혹했던 제르몽, 세상의 쾌락을 위하여 다른 이에게 무심했던 우리 모두”를 침묵하게 만든 대단원이었다.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개막작인 글로리아오페라단의 라트라비아타의 커튼콜 장면.
이날 공연에서 ‘옥의 티’는 자막이었다. ‘하나님’이란 말은 적절치 않았다. 이탈리아말 ‘dio’는 그냥 ‘신’이라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굳이 종교적 느낌을 강조한다면 ‘하느님’이 맞다. 오페라의 무대가 된 프랑스든 대본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든, 카톨릭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3막 〈사랑하는 이여, 파리를 떠나서 Parigi, o cara〉에 이어지는 비올레타의 대사 “교회 갑시다”도 억지스럽다. 가사에 나오는 ‘tempio’는 원래 ‘사원’이란 뜻이지만, 이 맥락에서는 ‘성당’으로 하는 게 무난했을 것이다. ‘비로소’를 비로서‘라고 쓰는 등 철자가 틀린 것도 있었고, 말줄임표는 (...)가 아니라 (…)로 해야 맞다. 전체적인 공연 역량은 세계 수준을 바라보는 지금, 자막도 좀 더 질높게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출처 : 서울문화투데이(http://www.sctoday.co.kr)